1. 오징어 게임의 디자인 프리 프로덕션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2021년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최근에 오징어 게임의 주연이었던 이정재가 에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월드 TV 시리즈가 되었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의 미술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를 더욱 빛나는 미장센으로 만들어주었던 채경선 미술 감독의 영화 속 미술 디자인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녀는 영화의 핵심 컬러로 핑크색과 초록색 따뜻한 색감을 사용해서 기존의 어둡고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 장르물이 가지고 있는 미장센의 틀을 깼다.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를 위해 오징어 게임 미술 감독이 참고한 일러스트가 있다. 그 일러스트에는 높은 벽이 있고, 사다리 밑에 남자가 벽을 바라보고 서있다. 올라가고 싶어 하지만 다리가 군데군데 부서져 있어서 올라가지 못하고 높은 벽을 쳐다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녀는 시나리오를 읽으며 이 일러스트에 있는 남자의 심정에 많이 공감이 갔다고 한다. 오징어 게임의 배경 이미지에 대해서 특별히 서술한 지문이 초기 시나리오에는 적혀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채경선 감독은 시나리오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 황동혁 감독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고, 특히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황 감독이 쌍문동 골목길에서 주로 동네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서 보냈는데 이 분위기를 1화 빨간불 초록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과 6화 깐부 (구슬치기 게임) 촬영 배경에 구현을 했다.
2. 배경 마다 숨은 디테일 요소들
1) 거대한 숙소
게임 참가자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공간인 숙소의 핵심 콘셉트는 '도로 위에 버려진 사람들'이다. 특히 감시자들이 나타나는 공간은 고속도로 터미널 느낌을 주려고 거대한 아치 형태로 제작했다. 터널 아래 부분이 주로 타일이 붙어 있는 것을 착안해 숙소의 다른 면들은 타일을 붙여서 완성했다. 이를 통해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버려진 인간들이라는 오갈 데 없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미술 감독은 층층이 높게 쌓여 있는 침대는 대형 마트의 적재 창고를 참고 했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된 '짐(Box)' 같은 존재로 보이도록 의도했다. 고층으로 쌓아서 참가자들이 서로 싸우면 침대가 부서지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서 갈등 상황이 더 극대화된 효과를 주었다.
2) 공중에 매달려 있는 투명한 돼지저금통
오징어 게임에서는 참가자가 한 명 씩 죽을 때마다 숙소 가운데 달린 돼지저금통에 1억이 쌓인다. 돼지 코나 꼬리, 돈을 넣는 부분까지 내가 어릴 때 저금 할때 사용하던 귀여운 모양의 돼지 저금통 모양 그대로를 지니고 있다. 사이즈가 워낙 크기 때문에 CG인가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진짜 2m 지름으로 제작된 돼지 저금통이다. 초기에 채 감독은 유리 소재로 제작하고 싶었으나, 비용이 너무 비싸서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다. 다행히 유리 소재 대안이었던 투명 아크릴로 제작이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돼지 저금통에 456억을 다 넣으면 500kg이 넘는 엄청난 무게가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촬영 구조물이 무너지기도 해서 채 감독은 잠도 못 자고 촬영 내내 불안한 상황으로 돼지 저금통을 살펴봤다고 한다. 그리고 크리스털 하게 반짝여야 하는데 먼지가 자주 붙어서 먼지를 닦아주는 작업 또한 스태프들에게 상당히 고생스러운 작업이었다고 한다.
3) 복도
복도는 아주 상징적으로 오징어 게임의 대표 이미지로도 보여지는 참가자들이 게임 참여를 위해 걸어가는 공간이다. 네덜란드 화가 에셔의 영향을 받아서 제작되었다. 에셔의 그림은 무한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계단 그림들이 유명한데,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독보적이다. 오징어 게임 미술팀도 이 분위기를 구현해 내기 위해서 컬러와 도면 디자인, 실물 세트장 제작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 복잡한 계단 설계를 너무 정교하게 해서 실제 세트장에서도 배우나 스태프들이 한 번 들어가면 길을 잘 잃었다고 한다.
4) 핑크 컬러
영화 전반에 핑크 컬러가 많이 사용된다. 특히 게임을 실패하면 바로 죽이기 위해 총을 들고 있는 Guard들이 입는 핑크색 복장은 참가자들에게 두려움과 죽음의 상징이 되어 버린다. 또한 참가자들이 죽고나면 관에다 포장하는 핑크 리본 또한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참가자의 모습과 너무나 상반된 분위기를 풍긴다. 생사를 가르는 컬러처럼 상징이 되어서 게임마다 최종 Finish Line을 가리키는 곳에 모두 핑크색이 쓰였다.
5) 오징어 게임 상징 도형 - 원형, 사각형, 삼각형
처음에는 충격적인 스토리에 집중하다보니 잘 보이지 않지만, 미술 팀은 오징어 게임을 상징하는 이 표기를 넣기위해 항상 고민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경비원들의 마스크, 에피소드 1화에서 참가자들이 게임을 참가하면서 열고 들어오는 초록색 문 윗부분, 술래였던 영희의 머리핀 등에 동그라미 세모 네모 디테일이 숨어 있다.
3. 게임별 디자인 레퍼런스
1)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은 하늘은 밝고 따뜻한 낮인데 집과 숲은 밤으로 표현된 그림이다. 특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이런 초현실적인 분위기 디자인을 진행했다. 그리고 게임을 진행하는 로봇 영희 뒤에 있는 나무는 원래 초창기에는 전봇대였다. 이후 마그리트 그림 분위기를 참고하여 나무로 변경되면서 밝은 하늘, 경쾌한 컬러의 집 대문 이미지, 영희의 옷 컬러와 대조적이게 나무를 음울하고 음산한 밤의 분위기가 나도록 제작했다.
2)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기
에피소드 3화에서 뽑기 게임을 진행할 때 배경으로 나오는 놀이터는 미술 감독이 어릴때 큰 세상처럼 느껴졌던 놀이터의 공간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시선에서는 놀이터 기구가 커 보였고, 어른의 사이즈에도 커 보이도록 기구들을 대형으로 디자인했다.
4) 서커스와 피에로
에피소드 7에서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있다. 관람하는 VIP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채 감독은 관중이 지켜보는 피에로가 된 참가자들이 곡예하는 느낌을 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게임이 심각해지고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색감도 어둡게 표현되었다. 점점 더 암울한 분위기인 서커스 이미지가 돋보이게 제작되었다.
4. 채경선 미술 감독 정보
미술 감독은 미장센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특히, 감독이 시나리오에 글로 적은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미술 감독의 일이라고 채경선 미술 감독은 전했다 (미장센이란 영화의 스크린 속에 들어가는 공간, 세트, 배우 의상 스타일, 소품, 조명, 머리, 색감, 특수 효과 등을 말한다). 이미지 콘셉트를 잡아가는 프리 프로덕션과 실제 촬영이 진행되는 프로덕션 모두를 총괄하여 일을 하게 된다.
그녀는 미술 감독으로서 시나리오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역사와 건축사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한다. 각 시대마다 주는 분위기가 다르고, 당시 유행마다 건축 양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디테일한 구현을 위해 주의 깊게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해서 안톤 체호프 등 당시에 많이 봤던 연극들이 지금까지도 미술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소설책을 많이 읽는 편이고, 소설책에 나오는 지문을 통해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미술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멋지게 디자인을 해내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사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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